옛 재활용사업소 인근(상현동)에서 조사된 신석기시대 집터의 일부를 파괴하고 후대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돌방무덤이다. 무덤을 만들기 위한 구덩이는 북측의 짧은 벽을 기준으로 깊이 250cm 정도로 매우 깊었으며 위는 좁고 판석이 쌓여지는 부분부터는 넓어져 복주머니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무덤 안에서는 청동숟가락, 구슬, 널의 판재를 고정시키는데 쓰였던 못 등이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돌방무덤 朝鮮時代 石室墓
옛 재활용사업소 인근(상현동)에서 조사된 신석기시대 집터의 일부를 파괴하고 후대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돌방무덤이다. 무덤을 만들기 위한 구덩이는 북측의 짧은 벽을 기준으로 깊이 250cm 정도로 매우 깊었으며 위는 좁고 판석이 쌓여지는 부분부터는 넓어져 복주머니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무덤 안에서는 청동숟가락, 구슬, 널의 판재를 고정시키는데 쓰였던 못 등이 출토되었다.
추정 고인돌 推定 支石墓
이의동 작은 안골 마을 논 가운데에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상석에는 신앙 또는 농경을 위한 별자리 흔적으로 알려진 성혈(性穴 또는 星穴) 여러 개가 확인되었지만 상석 아래의 매장시설은 확인되지 않았다. 상석의 아랫부분을 조사한 결과 20~40cm 크기의 깬 돌들이 직사각형의 형태로 둘러져 있었고, 그 안에는 10~20cm 크기의 깬 돌들이 점토와 함께 무질서하게 채워져 있었으나 관련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추정 고인돌 推定 支石墓
이의동 뒷골 마을 언덕 경사면에 있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상석에는 여러 개의 성혈이 보이고 있어 아랫부분이 없어진 상석일 가능성은 있으나 상석 아래의 매장시설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통일신라시대 돌덧널무덤 統一新羅時代 石槨墓
돌덧널무덤은 지하에 깊이 구덩이를 파고 자연 판석이나 자갈돌을 쌓아 직사각형의 덧널을 짠 무덤이다. 여기에 시신을 직접 묻거나 목관에 넣어 매장하기도 한다. 이 무덤은 광교신도시 개발과정에서 이의동에서 조사된 것으로 수원지역의 통일신라시대 매장 방식과 출토유물을 통해 무덤의 축조 연대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무덤 안에서는 연한 황색의 단지와 흑회색의 완이 함께 출토되었다.
통일신라시대 돌방무덤 統一新羅時代 石室墓
돌방무덤은 넓적한 판석을 쌓아 나들이를 위한 널길(羨道)과 주검이 안치되는 널방(玄室)을 만든 무덤으로 석실분(石室墳)·석실묘(石室墓)라고도 한다. 이 무덤은 광교신도시 개발과정에서 이의동에서 조사된 것이다. 무덤 안에서는 숫돌, 널의 판재를 고정시키는데 쓰였던 못과 허리띠의 겉에 다는 금속 장신구 등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