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 이종학(1927 ~ 2002)은 왜곡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근거 없는 주장을 일삼는 주변국으로부터 우리 역사와 영토를
지키기 위한 사료 수집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역사왜곡에 대한 일시적 분노나 외침이 아니라 객관적인 역사 자료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 허구적인 주장에 대응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가 관심을 가진 분야는 지도와 고서 등에 나타난 소중한 우리 영토에 대한 기록, 일제에 의해 자행된 침탈 관련 자료들이었고,
그는 자료 수집을 통해 제대로 된 과거 청산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이 밖에도 이순신과 관련된 사료, 정조와 수원화성에 대한 자료는 물론 선조들의 뛰어난 문화와 예술성을 엿볼 수 있는 수많은 유물을 모아 관련 기관에 기증하였습니다.
이종학의 사료 수집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고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 우리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시유물 보기
삼국접양지도
1785년 | 70×49cm 영인본일본의 대표적인 실학자 하야시 시헤이(林子平, 1738~1793)가 저술한 『삼국통람도설 三國通覽圖說』에 수록된 부속지도 5장 중 하나이다. 지도에서 이야기하는 세 나라는 조선(朝鮮), 유구(琉球, 지금의 오키나와지역), 하이(蝦夷, 아이누족이 살던 홋카이도 이북 지역)로 나라별로 채색을 달리하여 국경과 영토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조선은 흰색, 일본은 회색으로 채색되어 있으며 동해바다 한가운데 큰 섬(울릉도) 하나와 그 오른쪽에 작은 섬(독도) 하나를 붙여 그렸습니다. 이 섬들은 모두 조선과 같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왼쪽 큰 섬에는 다케시마竹島로 표기한 다음 그 아래에 "朝鮮ノ持之(조선이 소유하고 있다)"와 "此島ヨリ隱州ヲ望又朝鮮ヲモ見ル(이 섬에서 은주가 보이고 또 조선도 보인다)"라고 기록하여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충무공전서
1795년 | 34.5×21.6cm충무공 이순신의 유고 전집으로 총 14권 8책이다. 1795년(정조 19) 정조의 명으로 교서관校書館에 이를 관장할 국局을 설치하고, 이순신의 유고와 관계 문건을 망라해 규장각검서 유득공柳得恭(1748~?)의 감독아래 편집, 간행되었다.
책머리에 정조의 윤음綸音을 비롯하여 교유敎諭·사제문賜祭文·도설圖說이 실려 있고, 이순신의 세보世譜·연표 등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장계狀啓·난중일기亂中日記를 포함하여 이순신의 비문·기문記文·제문 등이 남겨져 있다.
특히 권수 「도설」에는 통제영귀선統制營龜船, 전라좌수영귀선全羅左水營龜船을 그린 그림이 수록되어 있어 거북선의 구조를 밝히는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이순신 개인의 일대기적 자료로써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당시 사회상 연구에도 꼭 필요한 기록이다.
생활상태조사 수원군
1929년 | 22.5×16.0cm1929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사보고서이다. 내용은 총론, 경제사정, 부락의 특성, 생활양식, 문화사상, 생활상태, 농가의 수기, 지도, 사진 등으로 이루어졌다. 총론에서 밝히고 있듯이 일제는 경제조사를 근간으로 하여 식민지 조선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수원군을 비롯한 조선의 대표적 시·군을 대상으로 이러한 작업을 지속하였다.
관습조사보고서
일제강점기규격 다양일제는 조선을 식민지화하려는 의도에서 관습조사사업을 시행하였다. 1906년 통감부 설치와 함께 각종 제도와 법률 정비에 착수하였고, 이는 식민지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철저한 준비 작업이였으며, 일제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조선에 대한 억압적이고 강제적인 식민통치를 강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종학은 친족ㆍ상속ㆍ유언 등에 관한 민법조사, 상행위ㆍ회사ㆍ해상 등에 관한 상법 조사, 지명유래 등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다양한 분야에 걸친 보고서 750점을 기증하였다. 현재 일제의 관습조사보고서는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자료와 미국 하와이대 서대국 교수가 수집한 자료등이 알려져 있는데, 이 중 이종학 수집 관습조사보고서가 양적ㆍ질적으로 단연 앞선다.
간도사정개요
1929년 | 38×5.5cm간도지역의 인문ㆍ자연환경을 간단히 소개하는 개요서다. 앞면에는 간도지역의 위치ㆍ지세ㆍ면적ㆍ기후ㆍ인구ㆍ산업ㆍ교통ㆍ금융ㆍ종교ㆍ관할도읍 등에 대한 정보가 있고 뒷면에는 간도지역의 주요산업시설 및 철도노선이 그려져 있다.
화성성역의궤
1996년 | 36.8×22.8cm 영인본1794년(정조 18) 1월부터 1796년(정조 20) 9월까지 진행된 화성성역의 전 과정을 기록한 의궤로 1801년 9월 금속활자인 정리자본整理字本으로 간행되었다. 총 9책으로 구성되었으며, 화성성역에 대한 모든 내용이 담겨져 있는 종합보고서로 당시의 건축기술 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이종학은 ‘화성’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자 『화성성역의궤』를 영인하여 국내 주요 기관과 연구자는 물론 해외 각국의 문화재 관련기관에 배포하였다. 특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실사단에 기증하여 건축물의 우수성과 기록물의 우수성을 함께 인정받으며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조선총독부 수원고등농림학교 요람
1939년 | 18×10.5cm수원농림학교가 1922년 조선총독부 수원고등농림학교로 변경된 이후 발간된 학교 요람이다. 학교의 다양한 정보를 간략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별첨으로 평면도가 들어 있다. 수원고등농림학교는 1904년 개편된 농공상학교에서 시작되었다. 1906년 농상공부 소관 농림학교로 분리되었고 이후 권업모범장이 수원에 설치되면서 1907년 농림학교는 수원 서둔촌으로 이전하였다. 1911년 조선총독부 부속 농림학교가 되었고, 1918년 수원농림전문학교로 승격되었다. 이후 1922년 조선총독부 수원고등농림학교로 변경되었다.